[한미부부] 나는 내 경험을 의심했다
.-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 도대체 어른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렇게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류시화님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과거에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 말들이
하나씩 떠오를 때가 있다.
오늘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장녀로 자라면서 어른에 대한 공경이
자연스럽게 박히도록 교육되었다.
전 시댁과 언쟁이 있었을 때,
어른들이 나와 전 남편의 이혼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혹은 이혼 후 자녀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부모의 깊은 마음을 모른다며 질책받았을 때,
위 상황들로 하여금 나를 되먹지 못한 인간이나
아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세우기 적합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어른에 대한 공경이 어디서부터 나와야하며,
도대체 어른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싫은데도, 내 의견에 반하는데도
어른이라는 이유하나로 그들의 말이 옳다고
동의해야만 하는 건가?
내가 생각한 어른은 우리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기준이 되었는데
전혀 다른 유형의 어른들이 나타나
내가 자라온 환경과 교육과, 가치를
모두 틀렸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는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옳다는 건가?
전형적인 흑백논리와 나이 먹으면
무조건 존중하거나 따라야 한다는 생각,
예외는 곧 돌연변이 즉, 잘못된 것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맞다는 사고
등은 나를 너무 어지럽게 했다.
만약 내가 제대로 서 있었다면
굴하지 않았을 텐데...
그들에게 반문했다.
" 내가 이혼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전 시댁에서 회유, 협박등 갖은 방법을 쓰더라도
내가 내린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결혼한 사람은 시댁이 아니라 전남편이기 때문이다. "
"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나 적용되는 말이다.
그것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일 뿐이다.
다른 나라를 가면 나이불문 노인과 아이가
친구가 될 수 있다.
부모가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는 말은
공통이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형적인 한국형 어머니가 맞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또한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어머니들이 존재하고 아이들도 다양한데,
그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방법만이
최고라는 자문화중심주의적인 생각은
오히려 자녀들을 하나의 틀속에 가둘 수 있다.
오히려 정답은 없다.
따라서 내 아이의 성향을 우선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하면
아이도 부모도 함께 성장함이 아닌가? "
당시 30대 초반이었고,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가족들과
대척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됨으로써
나는 더욱 힘들었었다.
그때 또 알게 된 사실은
가족도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과
그럴 경우 대립하지 않고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위와 같은 경험이 없었다면 어떻게 배웠을까?
어느 날 아빠 그러셨다.
" 너는 모든 걸 경험으로 체득하는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경험을 다 해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네가 너무 피곤할까 봐 걱정이다"라고
가족 누구도 하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상처받을 것을 미리 아셨던 것일까.
그런 기질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뿌리를 쫓아가보니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 같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류시화 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p11-12]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너에겐 더 좋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트레킹을 할 테니까 말이야.
필요한 장비와 도구를 구할 수 있으리란 걸 난 알고 있었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란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