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부부] 시와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
나에게 시와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
혹은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내 등을 턱턱 두드려 줄 수 있는..
일종의 감정해소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년 만에 만난 첫 직장 동료와 대화 중에서도
극 효율성 추구하는 I 라며 ㅋㅋㅋ
놀리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 친구는 극 E 여서
한 번씩 내가 고민을 털어 놓으면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했다.
- 상대방이 너에게 " 그럼 나는?" 이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말은 " 나를 좀 이해해줘. 나를 좀 봐줘"
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될거야 -
'너는 너고 나는 난데' 라는 생각에서 떨쳐 버릴 순 없지만
그 친구의 말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그럼 나는? '이라고
할 것을 상상해보며 연습중이다.
아마 그 연습의 연장선이 시와 에세이 읽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성적이지만, 감성적인 부분도 깊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이성적인 것이 독단주의와 같은 것은 아니며,
이성적인 것이 효율성만 추구하고, 효과성을 내팽겨쳐버리는
극단적 일방주의를 내포함은 더더구나 아니다.
뭐랄까.
합리적 개인주의에 도달하고자하는 이성주의자
그럴려면 차가운 이성으로 따뜻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서론이 길어졌다.
두 번째로, 독서법의 변형이다.
주로 자기계발서나 철학, 독서법 등만 읽어왔는데
새로운 독서법을 적용 중이다.
한국서 가져오길 잘 했다드는 생각이
내 책과 책장이다.
남편은 왜 무거운걸 들고 가느냐라고 핀잔을 줬었지만
시부모님은 그 책들이 쏭 친구가 될거라고 얘기해주셨다.
어찌나 맞는 말씀만 하시는 분들인지 ㅋㅋ
(매사에 합리적이셔서 이분들이 너무 좋다)
내 책장엔 스티커가 붙어져 있는데,
나름대로 항목을 만들어 분류해서 꽂아 두고 읽고 싶은 책은 다시 읽어보고,
기억했던 책들이다.
은 반정도 버리는데 아깝지는 않다.
다시 사면 되니까. 어차피 소비재잖아.
책은 유형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생산재이므로 꼭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이 끝나면 그 책에서 추천하거나
연관된 책을 찾아 읽어보던 습관이 있다.
고명환씨 책 - [고전이 답했다]에서 매일 다른 분야의 책을 10페이지씩 정독하는 법을 추천하였다.
이 새로운 방법은 마치 부폐에 가서 이것 저것 먹어보고,
각 음식별로 맛을 음미해 볼수 있고,
비슷한데 다른 것을 도전해볼 수 도 있고,
평소 안 먹어보던 것도 먹어 볼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결과로 지금 내 서재에는
역사, 과학, 시, 소설, 영어필사, 자기계발, 부동산, 영성, 공부법, 글쓰기, 주식, 대본 등
담을 수 있는 건 다 담아 놓은 듯 하다.
그의 말대로 작게나마 10-20 페이지씩 읽어보니
까먹었던 내용은 밑줄 친 것만 다시 읽으면 내용이 기억나고,
그럼 오늘 읽어야할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또 생긴다.
같은 분야의 책을 읽으면,비슷한 의미인데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 그것 또한 앎의 즐거움이긴 하다.
가장 효과적인 부분은 과학도서와 시, 고전, 자기계발, 영성등의
연관성을 발견하면서 읽는 즐거움이다.
그러면서 내 생각과 행동, 그리고 오늘의 나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이라는 나는 정말 이성적인걸까? 이성적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오늘 이성적이지 못했던 일은 무엇인가?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누구인가?
오늘은 어떤 가치로 하루를 정리하며 살았는가?
충분히 만족스러웠는가? 내일은 어떤 이슈와 함께 즐겁게 보낼 것인가?등등
나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하루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내가 누구이든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형이든지
그것을 자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럴려면 자양분이 필요한데, 그것이 독서와 글쓰기이다.